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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대선은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될 것으로 여겨졌다. 대선경선 캠페인부터 민주당은 공화당에 훨씬 앞서 있었다. 유력한 후보가 확실하게 점지되어 있던 민주당과 다르게 공화당은 공화당 지지층에게조차 개연성이 부족한 후보들이 난립했다. 이때문에 초반엔 두번이나 대통령을 만들어낸 부시일가에서 또 한번 후보가 나오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많았다. 보수적인 기독교의 조직적 지지를 얻는 후보가 강세를 얻게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쪽이든, 민주당에서 나오게 될 후보와의 본선에서는 이길 자신감은 없어보였다.

2016년 공화당 경선에, 이전에 민주당원이고 클린턴 일가와 친목관계를 가지고 있던 도널드 트럼프씨가 참가했을때, 모두들 실소했다. 그는 공화당 후보들중에 가장 적은 후원금을 받으며 대선 경선레이스를 시작했다. 정치 로비가 일상화된 미국 선거에서 후원금 모금은 곧 지지세력의 조직력의 규모를 의미한다. 트럼프가 후원금 모금액이 최저였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를 반기는 세력이 없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2016년 미국 대선은 역대 미국 대선중 가장 기가 막힌 드라마였다. 대세론을 등에 업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거의 낙점되어가는 와중에, 공화당에서는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들을 하나씩 꺽으며 공화당 경선 1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공화당내의 혼돈은 민주당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것이었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된다면 대선은 그냥 껌 씹듯 쉬울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바로 이때문에 2016년 대선의 결과는 민주당에 큰 충격을 안겼을뿐만 아니라, 선거에서 이긴 공화당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많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트럼프에 등을 돌렸다는 기사들이 언론에 쏟아져 나왔지만, 그보다 더 많은 공화당 지지자들, 그리고 러스트벨트에 있던 구민주당 지지층들이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혹자는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이슈와 IMF의 개입이 선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힐러리와 비교해서 트럼프가 그렇게 도덕적인 후보는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힐러리의 대세론을 트럼프를 향한 돌풍이 이겼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미국 유권자들은 힐러리보다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을까?


2016년의 미국 대선은 굳이 비교하자면 2002년 대한민국 대선과 닮은 점이 있다. 2002년 대선당시 한국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는 야당인 보수정당의 이회창 후보였다. 이에 반해서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확실하게 이에 맞설만한 대통령 후보가 나타나지 않았던 상태였다. 민주당 지지층들은 민주당에서 뽑는 대선후보를 지지하겠지만, 민주당의 코어지지층은 전체의 20%도 되지 못했다. 이이 반해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의 코어 지지층은 전체의 40%에 육박했다. 

민주당이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당시 두 거대정당에 속해있지 않으면서 20%이상의 지지율을 가지고 있던 제3 후보와 단일화가 필수적이었다. 2002년 대선은 이회창을 이기기 위해 남은 세력들의 합종연횡의 게임으로 흘러갔다.

이회창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 두 아들의 병역문제에 대한 의혹이 가장 컸다고도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정치인 가족의 병역문제가 선거에서 큰 이슈로 부각되고 선거결과에 영향까지 미친 예는 찾아봐도 이회창이 유일하다. 다른 후보들은 크고작은 선거에서 병역문제가 큰 이슈거리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회창에게만 병역문제가 큰 이슈가 되어버렸을까?

나는 이것을 착시효과라고 본다. 유권자들이 이회창을 찍지 않은 것에 대한 뚜렷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기때문에 가장 유력한 선택지의 답안을 골랐다는 얘기다. 비유하자면 시험을 보는 학생이 문제의 답안을 잘 알지 못하니까 가장 그럴듯한 답안에 동그라미를 친 셈이다. 2002년 선거의 결과는 여러모로 의문인 점이 많다. 결과만 보고 노무현이 엄청난 돌풍을 일으킨 것처럼 얘기하지만, 정말 2002년 당시에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돌풍을 일으킬 정도로 지명도가 있었던 사람일까? 성실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얘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정도 인품을 가진 사람들은 정치인들중에 얼마든지 있었다. 무엇보다 이회창도 인품면에서는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고, 노무현과 단일화를 한 정몽준도 2002년 당시의 평가는 그렇게 낮지 않았다. 2002년에 헤드라인을 장식한 정치인중에 가장 평가가 좋지 않았던 인물은 이인제였다.

3김체제에 대한 염증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나는 여기 동의하지 않는다. 노무현 자신도 대통령이 되고나서는 이런 평가에 귀를 기울였는지, 3김 체제의 유산을 벗어던지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대북송금특검으로 DJ와 측근들을 벼랑끝까지 몰아넣었고, 탄핵까지 무릅쓰고 민주당과 결별했으며, 구민주당계 정치인들을 멀리하고 가장 정치의 아웃사이더들인 운동권 세력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의 결과는 선거 결과로 나왔듯이 유권자들,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유권자들이 기득권 정치에 염증을 갖고 있었던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를 다른 신세력으로 대체해야한다고 여기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좌파 내에서는 노무현에 대한 장미빛 평가를 동인지처럼 쏟아내고 있지만,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이미 2007년 대선에서 내려져 있다. 대통령 탄핵이슈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던 2017년 대선을 제외하고 역대 최악의 패배를 당했다. 2017년 대선도 결과를 보면 보수세력의 득표가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다. 국민들이 염증을 낸것은 구세력이 아니라 노무현식 정치에 대해서였다. 결국 그는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온지 1년만에 뇌물혐의로 조사를 받던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선거결과를 해석하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갈리는 경향이 심하다. 2007년 대선의 경우, 이명박의 압도적인 당선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좌파세력에 대한 단죄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또 반대편에서는 부동산 투기세력들의 조작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트럼프의 예에 대해서도, 노무현과 같은 식의 해석이 가능하다. 민주-공화 양당체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 등등... 그러나 트럼프도 대통령 임기 내내 이런 해석들에 대해 철저하게 배신을 하고 기대를 짓밟고 결국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내주었다는 점에서 노무현과 닮아있다. 다른 점은 트럼프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점 정도일까?


역으로, 힐러리나 이회창... 모두 대통령이 되고도 남을 커리어를 가진 인물들임에도 왜 선거에서 패했을까? 후보 자신들의 결격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상대편의 후보들이 과연 이를 꺾을정도의 능력자들이었냐고 묻는다면 글쎄? 힐러리는 이메일 스캔들이 발목을 잡고, 이회창은 아들들의 병풍이 발목을 잡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사실 둘다 너무 부풀려진 경향이 심하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도 힐러리는 구속되지 않았고, 노무현이 당선되고나서도 이회창과 관련된 의혹들은 진실로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럼 유권자들은 정치선동, 가짜뉴스에 넘어간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 내 생각은 이렇다. 대세론을 등에 업은 후보들은 어느정도의 파이를 품에 안고 있다. 이회창이 40%대의 공고한 지지층을 안고 있었던것처럼. 반면 상대 후보들은 20%안팍의 낮은 지지층을 안고 선거캠페인을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대세론을 지닌 유력 후보들의 공고한 지지층이 때론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선거 캠페인에서 캠프는 40%대의 막강한 지지층에 힘입어 거기에 알맞는 레시피를 내놓기 마련이다. 그리고 때론 아직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에게 당근을 내놓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의 시각에서는 유력한 후보의 캠프에서 내놓는 당근과 그를 지지하는 공고한 지지층을 위한 레시피 사이에서의 격차다.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은 후보의 당근, 정책이나 포퓰리즘같은 것들이 좋으냐 나쁘냐를 따지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A(지지층)에게 주는 것과 B(중도층)에게 주는 것의 간극이 얼마나 되느냐는 점이다. 이회창이 대통령이 됨으로써, 혹은 힐러리가 대통령이 됨으로써 A가 얻는 것은 승리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상대방의 것을 약탈하고, 노예로 삼는다. 이것이 A가 얻는 레시피다. 그러나 B가 얻는 것은? 중도층에게 있어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본선에 당선한다고 뭔가 엄청난 승리감을 느끼는게 있을까? 그렇다면 그러한 승리감에 견줄만큼 캠프에서 주는 멋진 정책이 있는가?

바로 이런 점에서 유력하지 못한 후보가 갖는 상대적인 메리트가 존재한다. 보통 네거티브를 상대 후보의 도덕적 결함을 들추는 경향이 많지만 이런식의 선거캠페인이 성공한 예는 드물다. 이것은 네거티브가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라 네거티브의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이회창을 두 아들의 병역문제만 가지고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이회창의 부유한 삶을 어떻게든 부각시키려고 했다. 한나라당은 부패한 부자정당이고, 대통령 후보는 서민의 삶을 전혀 모른다며 여러가지 선동을 했다. 이런 선동 자체는 생각만큼 선거에 먹히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서민들 입장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고 빚을 한더미 안고 있는 정치인을 지지할 이유가 있을까? 2002년의 한나라당, 이회창이 놓친 커다란 실수는 이런 선동이 파생적으로 만든 이미지에 있다. 단순히 이회창의 상대가 이인제나 정몽준이었다면 나타나지 않았을 효과. 상대 후보가 노무현이었다는 사실때문에 나타난 파생적인 효과가 있었다는 얘기다. 


때문에 당시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좀더 파격적인 정책적 제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었지만, 그들은 승리감에 미리 도취되어 이를 게을리 했다. 그들의 대선 정책이 결코 나쁘다거나 허술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약점을 뒤덮을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미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40%에 육박하는 공고한 지지층의 분위게 휩쌓여 그럴 필요를 못느낀 것. 그것이 바로 가장 결정적 패인이 되었다.

이에 반해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마찬가지로 대세을 등에 업고 있었음에도 정부여당의 BBK 특검공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선거캠프가 잘한 점은 이런 공세에 대해 파격적 제안을 내놓았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자기 재산 전부를 사회환원한다고 폭탄발언을 했고, 이것이 곧 BBK뿐 아니라 상대후보들의 이슈까지 덮어버렸다. 


이기고 있을때 잘하라는 말이 있다. 이회창은 이걸 잘 못했고, 이명박은 이걸 잘 했다.

어떤 후보든 약점은 있다. 그리고 어떤 유권자들이든 그런 약점은 대체로 알고 있다. 몰라서 찍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알고도 찍는다. 그렇다면 선거캠페인에서 네거티브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유권자들이 다 아는 상대의 약점을 직접 찌르는게 답안은 아니다. 자꾸 그런 네거티브 캠페인을 반복하면 오히려 유권자들은 식상해한다. 민주당 경선에서 이낙연의 실수가 바로 이런 것이다. 네거티브를 통해 노려야 하는 것은 상대 후보의 흠결이 아니라, 그 후보와 코어지지층들, 그리고 그 서클 바깥에 있는 유권자들 사이의 간근과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는데 있다. 2002년 민주당은 이걸 참 잘해서 이겼다. 노무현이라서 이긴게 아니었다. 노무현은 그저 그런 캠페인에 필요한 적절한 체스 말이었을 뿐이다.

현재 벌어지는 국민의힘 대선경선을 보면, 어느 한 후보의 대세론이 존재하진 않는다는 점에서는 한편으로 흥미진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떤 후보도 제대로 된 선거캠페인을 하고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 정책홍보든 네거티브든, 결국 그 효과는 유권자들에 대한 호소력에서 나온다. 이낙연의 네거티브가 이재명의 대세론을 이겨내지 못한것과 비교해서, 윤석열과 홍준표의 공방은 코어지지자들의 자기위로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그 바깥의 유권자들에게는 어떻게 비칠까?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증세없는 복지' 이슈로 민주당의 '무상복지' 이슈를 무력화한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선거를 지배하는 것은 후보의 약점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편견과 상식이라는 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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