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빅브라더 잡담


1980-90년대에 나온 SF 만화나 영화에서, 세상을 칙칙하게 다룬 세기말 작품들이 꽤 있었다. 핵전쟁, 산성비, 돌연변이, 그리고 인간의 정신을 세뇌하고 파괴하는 정치공작등등... 이런 어둡고 칙칙한 이야기들은 냉전,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혁명과 빈부격차의 확대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런 칙칙한 미래중 일부는 현실로 일어나지 않았다. 2020년이지만 여전히 핵무기 는 사용되지 않고 있고, 산성비때문에 사람들이 밖을 돌아다니지 못하는 일도 없다. 돌연변이나 인조인간들의 반란, 인간 두뇌를 세뇌하는 정부의 음모... 이런 일들은 영화속에서도 식상한 소재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칙칙한 미래를 다룬 20세기 작품들중에서도 가장 걸작이면서 고전인 조지오웰의 1984는 그 숫자만 바뀌어 현재진행형이다. 사방에서 인간을 감시한다는 이 미래의 설정은 1949년에 씌어진 것이고, 조지오웰은 그것이 40여년 뒤에는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라 여겼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40년 더 뒤의 미래에 그것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전염병을 계기로 현실화 된다.

불과 2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계절 상관없이 매일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친인척이나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세상이 올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거다. 그러나 중국 우한에서 발병된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서 이런 일은 이제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내가 무엇보다 놀랐던 일은 사람들이 개개인마다 바코드를 부여받아서 밥먹으러 가는 식당, 물건 사는 마켓, 그리고 직장이나 생활공간에서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정부에 제공하고 다닌다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염병 확산을 위해서라고는 하나, 이런 개인정보의 실시간 노출은 그 데이터가 어딘가에 쌓이고, 그만큼 사람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쉬워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이 글을 보는 사람이 일주일간 이동하는 궤적을 지도에 계속 그려본다고 가정해보자.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들의 행동궤적이 상당히 단조롭고 편향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언제나 다니던 출퇴근길, 언제나 가던 슈퍼마켓, 언제나 다니던 헬스클럽, 그리고 언제나 가던 식당들... 거의 이런 행동 루트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그런 행동 궤적이 디지털로 입력되어 어딘가에 쌓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단지 코로나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이런 개인의 일상이 수집된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모든 문제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이런 개인정보들의 관리 주체는 누구이고, 그것의 활용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어떤 이들은 법으로 이런 데이터들의 관리를 엄격하게 규제할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수시로 뉴스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포털사이트나 은행, 금융기관들의 사고 소식을 접한다. 정부라면 덜할까? 오히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런 전국민의 데이터들이 해킹되어 해외로 유출되는 경우다. 과거에는 주민등록번호나 전화번로만 털렸다지만, 이젠 개개인의 일상이 털리는 것이다. 해킹이 아니더라도 범죄정보 공유를 핑계로 국가간 개인정보 공유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진행되던 일들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여태껏 코로나가 진행되는 동안 제대로 지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지성인들의 수준을 떨어뜨렸다는 얘기다. 만일 코로나 사태가 아니었다면, 만일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이런 개인정보 수집이 진행되었다면 언론이 가만히 있었을까?

놀랍게도 20세기 사이버펑크물들에서 나오는 정부나 조직이 어떤 사람을 세뇌하는 과정에 쓰이는 것은 바로 이런 개인 일상의 데이터들, 사진이나 돌아다니던 곳, 자주 찾는 식당이나 만나는 친구...같은 기억들이다. 1949년에 조지오웰이 썼던 일들이 이제와서 적나라하게 벌어지고 있다면 1980년대에 SF물들에서 우려하던 일들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하면 그게 기우일까? 이미 디지털화로 인해서 개개인의 금융정보를 정부가 마음대로 접근하는게 전혀 불가능하지 않은 시대가 되어있는데, 개인의 일상정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생체정보까지... 아니 생체정보는 이미 수집되고 있지... 이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겨진다면 이미 우리는 1980년대에 생각하던 그 미래에 다가선 것이 분명하다.


덧글

  • 다채로운 아이스크림 2021/10/29 13:47 #

    조지 오웰은 오늘도 1승을 챙겨갑니다.
  • 도연초 2021/10/29 13:58 #

    '임시조치만큼 영원한 것은 없다' 는 명언이 괜히 생긴 게 아니지요;
  • 존다리안 2021/10/29 18:27 #

    그게 효과적이라 생각해서 받아들이는 듯 한데
    여전히 어디서 전염됐는지 모를 환자가 자주 나오는 걸 보면 진짜 효율적인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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