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고디바와 초선의원의 원피스 잡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체, 긴 머리를 늘어뜨린 알몸으로 말을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그림, 레이디 고디바는 19세기 말에 그려졌지만, 원래는 오래전부터 영국에 전해내려오는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11세기경, 코벤트리 지방의 영주의 부인이었던 고디바는 주민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남편에게 그러지 말 것을 요청한다. 아내의 요구를 몇번이나 거절했지만 고디바 부인이 끈질기게 주민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걷지 말라고 요구하자, '알몸으로 말을 타고서 마을을 돌아다니고 온다면 요구에 응하겠다'라고 영주가 답한다. 

보수적인 기독교 신분제 사회에서 여성이 알몸으로 돌아다닌다는 것은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고, 한마디로 영주는 아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내건 것이다. 하지만 고디바 부인은 그 사실을 온 영지와 마을에 선포하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거리로 나서게 된다.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집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고디바 부인이 지나갈때까지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고디바 부인이 영지를 모두 돌고 돌아오자, 영주는 약속때로 세금을 가볍게 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국왕의 학정과 무거운 세금에 반발해서 귀족들이 여러차례 반란을 일으켜온 영국 역사에 비추어볼때, 영국 정치문화에 대한 상징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고, 그래서 19세기에는 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레이디 고디바가 보여준 나체의 행각은 고귀한 귀족 여성이 전통이나 관례적인 불의에 대해서 저항하는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정의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류XX 의원이 정장 차림이 아닌 원피스 바람으로 국회에 나타나 이슈를 일으켰는데, 본인의 말에 따르면 국회의 일률적인 관행에 대한 저항처럼 여겨진다. 뭐 그런 태도가 나쁜 것은 아니다. 시대가 지나면 사람의 행태나 생각이 달라질 수 있고, 또 300명의 국회의원들 중에 이색적인 행각을 보이는 사람 한둘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류XX의 원피스가 의아한 까닭은 본인의 말처럼 국회의 꼰대스런 관행에 대한 저항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너무 류XX 본인에게 편의주의적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어떤 정치적-혹은 사회적 의미를 담아 특이한 행동을 하려한다면, 마땅히 거기엔 그런 메세지가 올바로 담길만큼의 무게가 더해져야 한다. 정치적 메세지가 담긴 시위나 문화운동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지만, 이걸 오해하고 자기들에게 편의주의적으로만 해석해서 가장 편한 행태를 저항인양 가장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예를 들면 나이키 운동화 신고 맥도널드 햄버거 입에 물고서 미군 물러가라 외치는 대학생들이나, 일본 게임기를 사려고 줄을 서면서 인터넷에서는 '일본상품 불매' 운운하는 루리웹 회원들 처럼말이다.

어떤 정책이나 이슈에 대한 메세지를 담는 의미에서 원피스를 고르고 입었다면 몰라도, 그저 자기가 입고 싶은 옷 하나에 본인 입으로 '천편일률적인 관행을 깨고싶다'라고 포장을 해봤자, 게으른자의 게으른 핑계처럼 보일 뿐이다. 관행을 깨고싶다면, 관행때문에 본인이 불편한 것이 존재하듯, 관행이기때문에 본인이 편리하게 누리는 특혜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깊은 고민부터 있어야한다. 내가 받는 특혜는 그대로 수용하고, 내가 불리하거나 불편한 것들은 편의적으로 분류되어 버려지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젊은 정치세대의 모습일까? 이것이야말로 지금까지 우리가 지겹게 바라봤던 꼰대 정치인들의 모습이 아닌가?

옷색깔이 다르다고 꼰대가 아니게 되는게 아니다. 정장 입으면 꼰대고 아니면 아니게 되나? 다른 정장을 입은 젊은 정치인들은 자기보다 꼰대들이라서 그렇게 하는걸까?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새로운 세대의 정치인의 모습은 무엇일까? 총선이 끝난지 벌써 4달이 지나고 있다. 금뱃지를 단지는 60일이 훨씬 넘었다. 그럼 류XX은 그동안,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기획하고 무엇을 진행하며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바가 있는가. 류XX이 국민들에게, 그리고 여의도의 국회의원들에게 관행을 깨고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원피스가 아니라 다른데 있는게 아닌가?

영화 '그린북'에서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지역을 순회공연하는 피아니스트 셜리 박사는 흑인을 가게에 들이지 않는다는 백인 식당의 관행 앞에서 자신의 돈벌이인 공연을 포기하는 선택을 한다. 그들의 관행대로 흑인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하고, 백인 식당으로 와서 공연을 하며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셜리는 백인 식당의 공연의 계약을 포기하고 흑인 식당으로 와서 식사를 하고 무료공연을 펼친다. 관행에 대한 저항에는 스스로 책임져야하는 무게가 더해져야 한다는 것은 이런걸 말한다.

레이디 고디바가 남편의 생각을 바꾸는데는 몇번이나 남편을 설득하고 주민들이 이에 호응하도록 하는 과정이 있었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게임을 대리로 시킬 수 있어도, 현실은 대리로 살아갈 수 없다. 그것도 모르는 철부지의 편의적인 놀음에 언론과 세상이 놀아나는 꼴이 한심할 뿐이다. 이제 진짜와 가짜정도는 구분해야 할때가 아닐까?

덧글

  • 터프한 둘리 2020/08/06 07:54 #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의 대표적인 사롑니다.
  • 도연초 2020/08/06 09:24 #

    관종짓을 이렇게 미화하는 것도 드물 겁니다
  • 소시민 제이 2020/08/06 13:21 #

    뭐...고디바 부인보단 그걸 몰래 훔쳐본 피핑톰이 어울릴거 같은게 현재의 문제.
  • 無碍子 2020/08/06 13:39 #

    "국회의 권위가 영원히 양복으로 세워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소신을 밝혔다는데 말입니다.
    빨간원피스가 양복입니다. 의원께서는 자기가 입고있는 옷이 양복인지 한복인지도 모르고 말하는겁니다.
  • 따뜻한 바다표범 2020/08/08 00:44 #

    괜히 원피스에 시비거니까 그러는거 아님?
  • 담배피는남자 2020/08/09 13:22 #

    이미 국회의원 됐으니깐요
    선거유세할때 저러고 다니면 인정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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