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와 기생충, 오스카 수상에 대한 단상 영화,비디오




미국에서 영화계를 뜻하는 지역이 헐리우드인것 처럼, 한국에서는 충무로가 그렇다. 과거에는 극장을 중심으로 영화제작사들이 모여있었는데, 이건 어찌보면 당연한게, 영화를 힘들게 만들어도 그걸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극장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니 영화계에 대한 극장의 기득권이란 정말 대단했다. 극장에 새 영화가 걸릴때마다 관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당연히 주변 상권은 활기를 띄었다. 영화 '장군의 아들'을 보면 깡패들이 극장을 아지트로 해서 활동하는데, 그만큼 이권이 도는 공간이라는 얘기였다. 극장들 입장에서는 관객들이 많이 모일 영화를 스크린에 거는게 이익이었고, 당연히 한국영화보다 미국영화가 더 인기가 좋았다.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에서 규제를 한게 스크린쿼터...라지만 실상을 보면 당시 극장은 수가 적어서 한국영화든 미국영화든 걸리면 흥행을 했다. 스크린쿼터가 시작된 1960년대는 한국영화가 질적으로 꽤나 좋았던 시절이기도 하고...

스크린쿼터의 본질은 정부가 영화계와 서로 유착하기 위한 장치라는게 내 생각이다. 이걸 이해하려면 먼저 그 시절이 TV가 보급되기 이전이라는걸 알아둘 필요가 있다. 집집마다 TV가 있어서 매일매일 뉴스를 보고, 아나운서와 기자들의 힘이 막강해진건 1980년대 이후의 일이고, 1960년대 후반만 해도 언론은 그냥 신문이고, 대중미디어는 서커스 아니면 영화였다. 민주주의든 전체주의든간에 권력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대중 미디어와의 유착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었고 스크린쿼터는 당시 대중들의 가장 인기있는 매체인 영화와 극장을 정치권력이 접근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1980년대에 집집마다 컬러TV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80년대말에 VTR이 보급되면서 사실상 극장은 힘을 잃었다. 특히 타격을 받은게 한국영화계 - 충무로였다. 주로 한국영화에서 다루던 드라마들은 이미 TV를 통해서 더 많이 보급되고 있었고, 개개의 배우들이 연출하는 액션이나 활극도 VTR을 통해 충분히 접근이 가능했다. 그러다보니 극장에서 선호하는 것은 엄청난 자본력으로 만든 헐리우드 영화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스크린쿼터는 이전과 다르게 한국 영화계가 자신을 약자 코스프레하고 정부를 압박하는 수단이 되었다.

한국영화가 스크린에 다시 복귀하게 된 계기는 수준높은 대중영화의 등장도 있지만 무엇보다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상영공간이 늘어난게 원인이다. 이전에는 극장 하나에 상영관이 하나, 많아야 두개였지만, 멀티플렉스는 극장 하나에 다섯개 이상의 상영관을 가지고 있다보니 여러 영화를 동시에 걸수 있었고, 이것이 한국영화가 생존하게 된 주된 원인이다. 거기에다 한국영화 수준이 올라간 이유는 이전에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 접할 수 있었던 장비들의 보급단가가 엄청나게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보통 영화는 35mm 필름으로 제작되지만 16mm 단편영화 30분짜리 하나 제작하는데에도 엄청난 돈이 들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대학생이 단편영화는 커녕 카메라 만져보는 것도 힘든 시절이었으니까. 영화제작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아기공룡 둘리로 유명한 김수정의 '일곱개의 숟가락'을 보면 집팔아서 영화제작비 대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게 농담이 아니었다.

영화제작환경이 나아진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이었다. 6mm 캠코더의 보급과 DVD의 등장은 영화제작시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수천만원짜리 영화촬영용 장비가 수백만원대로 내려갔고, 분당 수십만원씩 깨지던 필름이 몇만원짜리 저장매체로 바뀌었다. 당연히 젊은 영화학도들은 아르바이트 조금만 해도 자기 장비를 구입해서 실컷 영화를 찍어댈 수 있었다. 이전엔 손대기도 힘든 장비들을 마음껏 다루니 만들어지는 영화수준이 올라가는건 당연했다. 영화가 디지털화 되자 영화배급도 쉬워졌다. 수십만원짜리 프로젝터 덕분에 어디서나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여기에다 영세 극장들 중심의 영화업계에 대기업이 끼어들며 철저하게 산업화한 것도 큰 몫을 했다. 영화제작비가 엄청나게 올라간 이유도 여기 있었다. 좋게 말하면 환경변화에 빠르게 적응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영화제작자들이 기업 돈벌이의 노예화가 된 것이다. 겉으로는 작가주의니 뭐니 그럴듯한 얘기로 포장하지만 등 뒤에서는 빠르게 돈계산을 하는게 영화산업이다. 이것도 풀자면 꽤나 글이 길어지니 패스.


이런 최근 충무로 트랜드에서 성공한 감독중 하나가 바로 봉준호 감독이다. 내가 참 웃겼던게, 어떤 기사를 보니 봉준호가 살인의 추억 만들기 전에 참 힘들게 살았다 해서 무슨 가난한 영화감독이 찢어지게 굶주리며 힘들게 영화 만든줄 착각하게 해놨던데, 이 사람은 그거랑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일단 성장기부터가 집안이 문화적으로 풍족한 편이었고, 충무로 입봉하고 초기작이 흥행이 안좋았다지만 제작사측이 꽤나 밀어주고 있었다. 영화 한편 만들어보고 망해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감독들도 많은데도 살인의 추억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뒷배경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영화 망했는데 차기작 빨리 만들라고 독촉하는데 시나리오도 안쓰고 뒹굴고 있어서 납치해다 강릉 앞바다에 감금해놓고 시나리오 완성하라고 시켰다던가... 신입 감독이 처음영화 만드는데 제작사에서 당시 A급 배우를 추천해줬는데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주연으로 고집해서 밀어붙였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남달랐단 소리다. 

봉준호가 실력도 없던 사람이란 얘기는 아니다. 실력없는 사람이 부모나 뒷배경 덕에 노력없이 성공한다는 스토리는 문재인 정부에서나 가능한거지, 그 시절엔 영화감독이란 자리는 경쟁도 치열하고 당시엔 지금은 기라성같은 감독이 된 후보생들도 꽤 많았다. 조금 비약하자면 실력있는 금수저라고나 할까? 한국 대중들에게 심어진 끔찍한 습관중 하나가 능력있는 흙수저가 무능한 금수저들 등쌀에 기못핀다고 철썩같이 믿는건데, 조선시대라면 모를까, 현대 한국사회는 만만찮은 경쟁사회라 돈 잘벌어들일 능력이 보이는 인재들을 그냥 놔두질 않는다. 무엇보다 실력없는 금수저는 의외로 쉽게 망한다. 이게 경쟁사회의 가장 큰 미덕이다.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봉준호는 충분히 상을 탈 능력있는 감독이다. 그럼 뭐가 문젠가? 그에 대한 불편함이 아주 없다고 할 수 없는게 문제다. 내가 영화제를 다 보는건 아니지만, 영화 시상식을 하는데 영화에 돈대준 기업가가 무대에 서서 제 자랑 하는 경우는 본적이 없다. 아니,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처음 본다. 물론 앞서 얘기했듯이 영화는 앞에서는 예술 운운하지만 뒤에서는 돈계산을 철저히 하는 산업이다. 그 얘기는 돈 세는 일을 하는 사람은 절대 전면에 안나선다는 말이다. 디즈니가 돈즈니 소리를 듣곤 하지만 어벤저스 겨울왕국 스타워즈 쇼하는 장소에 회장님이 나타나 '이게 다 제가 노력해서 된겁니다 허허' 이딴 짓은 안한단 소리다. 그런데 봉준호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바로 그 자리에 CJ 부회장이 나타난다.

이게 한국영화계의 현실이다. 과거에는 극장주는 표팔면서 주판이나 두드렸는데, 이젠 나설자리 안나설자리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이 촌극에 대해 영화인들을 물론이고 언론들도 입을 다문다. 당연하지 돈주는 물주가 누군데.


이번 아카데미 시상을 두고 한국이 상 다 따먹는걸 보고 일본을 조롱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다르게 본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유일하게 상을 탄 일본인이 있는데, 분장상을 탄 카즈 히로다. 근데 이 양반 이번이 처음 탄게 아니다. 2년전인가 한번 탄적이 있는 꽤나 유명한 사람이다. 카즈 히로가 '난 일본 문화가 싫어서 미국으로 왔다'는게 화제가 되었다. 그의 말대로, 일본 영화계 문화계도 참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그러니 고국을 떠나 미국으로 와서 실력발휘를 한다. 이게 바로 프론티어 -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최강의 미덕이다. 하지만 그런 재능인을 거기까지 키운건 일본이기도 하다. 나는 오히려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며 굉장히 부러운게 있다. 창작을 하는 사람은 주변여건으로부터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나폴레옹도 비좁은 코르시카 섬을 버리고나서야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기생충의 수상을 통해 반지하방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는 기사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기생충을 만든 제작진들중에 반지하에서 제대로 살아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국내외를 불문하고 많은 영화인들이 가난의 문제를 주제로 영화를 만든다. 하지만 가난을 상품화하여 스크린에 팔아먹고 돈을 버는 것은 기업가들이고 부자들이다. 부자들이 가난을 상품화해서 팔아먹어 돈도 벌고 상도 타는 시대다. 이건 희안한게 아니다. 지하철 탈 줄도 모르는 정치인이 서민을 위한다고 말하고, 낙제생 딸을 논문조작으로 의사만드는 법무장관이 정의를 논하는 나라다. 다만 그런 시대를 용납한다 하더라도 그에 의해서 느껴지는 불편함까지 외면해서야 되겠나? 

내가 열손가락 안에 꼽는 영화중엔 영화제 감독상 작품상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영화가 많다. 그중 하나인 스타워즈는 사람들이 아는 편견과는 정 반대로, 가장 기업과는 거리가 먼 영화(였)다. 스타워즈가 인디영화라고 말하면 믿겠나? 근데 사실이다. 조지루카스는 20세기 폭스와 배급 계약을 하긴 했지만 영화 제작의 전권은 본인이 가졌다. 그 덕에 다큰 어른들이 영화사 한켠 창고에서 X자 날개 달린 우주선 모형을 손에 들고 '삐융삐융-'거리며 노는 희안한 광경을 노출했지만, 그는 가장 자유롭게 원하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시절의 스타워즈가 디즈니의 막대한 자본력을 등에 업은 후속작보다 더 잘만들어졌다. 영화 만들다 부도나서 망할뻔도 했지만 그 자유로움이 바로 스타워즈를 만들어냈다. 난 스타워즈가 다른 아카데미 작품상 받은 역대 수상작들보다 몇배는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봉준호에 대해서 느끼는 것은 이런거다. CJ와 멀티플렉스, 그리고 스크린 쿼터. 감독 자신에게 딱 맞는 맞춤형 정장같은 그 영화계에 대해 이젠 좀 불편함을 느낄때가 되지 않았을까? 딱히 스타워즈 같은걸 만들라는 얘기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성공을 거두면 더욱 그 성공에 집착하다 망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은 거기 연연하지 않고 다른 것에 도전하기도 한다.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든 봉준호 옆에 CJ 부회장이 함께 서있는 모습 속에서 빈부를 다룬 영화 '기생충'은 바로 저런영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국 영화계에서 오스카상을 네개나 손에 쥔 영화는 앞으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영화산업은 앞으로 더욱 더 가난을 상품으로 팔아먹으며 배를 불리겠지. 이게 희극일까 비극일까.

덧글

  • 타누키 2020/02/12 14:57 #

    잘봤습니다~
  • 오오 2020/02/12 15:07 #

    작품상은 프로듀서에게 가고, 그분이 기생충의 책임 프로듀서로 이름이 올라가 있어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돈...아니 디즈니 CEO는 개별 영화 프로듀서로 이름이 올라가지는 않죠. 겨울왕국의 경우도 수상할 때 감독 두분과 제작자 해서 세분이 올라왔구요.
  • SKY樂 2020/02/12 15:20 #

    같은 제작자 타이틀을 걸고 있어도 피터 델베코는 영화인 출신이고, 이미경은 돈 세는 기계죠. 좀 자리를 가렸어야 했다고 봅니다.
  • 우물쭈물하지않으리 2020/02/12 15:38 #

    ㅎㅎㅎㅎ 어제 글도 봤었는데 ㅎㅎㅎ 그냥 축하만 해주신다 하더니 재미난 글도 적으셨네요 ㅎㅎㅎ 잘봤습니다
  • SKY樂 2020/02/12 21:37 #

    작심 이틀이었습니다
  • 鷄르베로스 2020/02/12 16:00 #

    따로 뭐 하나 쓸까 하다가 그냥 여기다 적어봅니다

    1. 배우 개런티와 말단 스태프의 현실,처우 개선
    - 예전 스크린 쿼터제 궐기대회 관련해서 배우들이 욕을 먹었던 부분인데 이건 아직도 해결된게 거의 없죠

    2. 연예계 블랙리스트와 아카데미 수상에 따른 여러가지 반응
    - mb나 ㄹ혜 정권 당시 블랙리스트에 오른 연예인 중 실제 불이익을 당한 연예인은 대체 누굴까요??

    3. cj 의 창조경제 응원 문구
    - 여의도 텔레토비같은 풍자극 요즘은 왜 안나오나 모르겠습니다.
  • SKY樂 2020/02/12 21:41 #

    연예계야말로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이라... 피는 왼쪽으로 쏠려있나보지만...
  • 타마 2020/02/12 16:50 #

    생각할 여지가 많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존다리안 2020/02/12 18:32 #

    나름대로 딜레마인게....
    자본의 지원 없이는 예술 역시도 서기는 어려운 게 현실인지라....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려스러운 점도 있는 것이 K-POP 자체가 과거 국내 가요시장의 연장선
    상이라기보다는 기업에 의해 철저하게 다양한 입맛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시각이 있더군요.

    이에 대해 책을 쓴 모 식자 말로는 이러한 형태의 문화가 가치가 낮은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말도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 보면 그러면 개인(들)의 창작으로서의 문화,예술은 뭐가 되냐는 생각도 들게 하더군요.
  • SKY樂 2020/02/12 21:42 #

    부자들이 예술을 진흥해오는거야 당연한거긴 한데, 예술을 장사의 수단으로 삼는건 또다른 문제인지라...
  • Gull_river 2020/02/13 00:11 #

    실력없는 금수저가 제일 오래 가더라구요.
    금수저 3형제 중 변호사와 대기업 들어간 두 아들은 그냥그냥 사는데, 제일 무능한 막내아들에게 건물 하나 증여해 줬더니 5년쯤 뒤에 XX단길이 뜨면서...(후략) 의 스토리를 주변에서 보고 나니, 능력보다 앞서는게 자산이구나 싶더라구요
  • 잘생긴 허스키 2020/02/13 01:44 #

    놀라운 통찰입니다.
  • 잘생긴 허스키 2020/02/13 01:57 #

    그래서 제목이 {기생충}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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