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단상 잡담

1.
드라마 '허준'에서, 서얼출신인 허준이 노비출신인 어머니와 함께 고향에서 쫓겨나듯 도망쳐나와 먼 경상도까지 내려와 정착을 하는 내용이 있다. 신분을 속이고 먼 타지에 와서 살아야하다보니, 변변히 먹고 살길도 막막하고 그렇다고 재주를 드러내놓고 다닐 형편도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 지역에 명의로 소문난 유의태를 알게되고, 그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약초꾼으로 일하게 된다. 그후 어찌어찌해서 문하에서 의술을 배운 허준에게 어느날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병든 딸을 고쳐달라 사정하는 그 사람들에 본의 아니게 치료를 해주게 되는데, 병이 낫자 아예 자기 딸과 결혼해달라고 간청을 한다.

갑작스런 혼담에 난처해진 허준에게 그 어머니는 '아직 우리가 여기 정착했다고 보기도 어려운데, 이 곳 사람과 혼인을 해서 연을 맺으면 살기 더 수월할 것이다'라며 설득하고 결국 그는 자신이 치료한 여자와 결혼을 한다.


2.
지금은 그런 경험을 하기 힘들지만, 1970-80년대에는 타지에서 도심으로 올라와 일을 따라 이사를 자주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등등 전국에서 젊은 사람들이 일을 찾아 도시로 몰려오다보니 하숙집, 사글세방등지에서 서로 마주치는 일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특이한 관계 속에서도 나름 텃세같은 것이 있어서 그 고장에서 그럭저럭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여기는 일도 많았다. 아무래도 새로 들어오는 이들은 자리잡은 사람들에 비해서는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곤궁한 경우가 많으니 이런 불편함은 복잡한 경향을 띄기 마련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불협화음을 그럭저럭 해소시키는 것들이 존재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일요일에 함께 등산이나 낚시를 통해서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하고, 혹은 그 동네의 교회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찬송가를 부르고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서로 얼굴 볼 일 없는 이들이 본의 아니게 친목을 다지게 되는 경우가 또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이들을 통한 교류였다.

아무래도 어린아이들은 그 동네 골목같은데서 모여 술래잡기를 하거나 여러가지 놀이를 통해 쉽게 친구가 되기 마련인데, 어른들의 사회보다 진입장벽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그리고 이렇게 아이들이 친해지면 그 부모들도 'XX네 엄마' 'OO이 아빠'라는 식으로 서로를 인식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매개로 하는 공동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학부모의 공동체로 이어졌고, 그 결속력은 그 동네의 학력수준과 결합하여 점차 강화되었다.


3.
결혼과 출산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공동체에 합류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아왔다. 사람들이 공동체에 합류해 살아가는 이유는 그것이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었다. 농촌사회에서는 그 지역공동체가 농기구나 일감을 공유하는 경향이 많고, 또 재난이나 말썽이 생기면 국가나 법에 의존하기보다 공동체의 협력과 룰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출산할 때에는 이웃집 여인들이 도움을 주고, 직업을 구할때에는 그 지역 사람들이 알게모르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타지에서 결코 여유가 없는 빈곤층들이 도시에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이런 급조된 공동체 안에서 급조된 룰과 협력의 역할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세대들이 아이들을 모두 키우고, 그 아이들이 결혼을 해야할 때쯤엔 그러한 공동체의 역할이 붕괴되고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고도성장이 꺾이면서 서로간의 여유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또한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인해서 더이상 그 지역의 급조된 공동체에 친목을 의존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점이 컸다. 여기에다 금융과 부동산 서비스의 발달은 경제적으로 공동체에 의존할 여지를 없애버렸다.

기존의 공동체적 역할이 부정되기 시작하면서 그것은 자연스레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의구심으로 발전했다. 여성들은 더이상 자신이 20대에 'XX네 엄마'로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 남성들도 가부장적인 권위가 퇴색됨에 따라서 스스로가 '권위적 가장'의 역할을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공동체 사회에서 만들어진 결혼과 출산에서 남녀의 역할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서 당연히 결혼연령은 늦어지고 출산은 줄어들었다. 


4.
OECD의 사례들을 볼때, 경제가 발전하고 산업사회가 고도화되었을때, 출산율 하락은 불가피한 '환경'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현재 정부의 출산정책은 너무 공학적 접근에 기울어진 측면이 있다. 출산 가정에 복지혜택을 얼마를 주고, 젊은이들에게 결혼수당을 얼마를 주면 출산율이 높아질거라는 애매한 공학적 판단이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더 열악한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결혼과 출산율이 매우 높았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 양육비때문에 출산이 힘들다'라거나, '내집마련이 어려워 결혼이 어렵다'라는 얘기들은 요즘 공공연한 것들이지만 과연 그것이 옳은 분석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는 이유다. 내가 보기에 결혼과 출산 문제는 좀 더 문화적인 시각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를 공학적 방식으로 풀어갈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공학적 접근으로 풀기엔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좀 더 분석방법이 발전하고 통계를 다루는 과학이 더 발달하면 모를까, 지금의 수준으로는 출산과 결혼문제를 정부가 통제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결국은 '결혼해야 하도록' 만들고, '출산하고 싶도록' 동기부여를 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닌, 사회에 섞여 살아가는 방식의 문제다. 혼자 살고, 혼자 나이들어 죽는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렇지 않은 세상에 대한 설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현재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문화적 방안에서는 결혼과 출산을 부정하고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고, 또 그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 TV에서 유명 개그맨이 아름다운 아나운서와 결혼하는 것을 보며 젊은이들은 결혼을 하고 싶어하게 될까? 유명 연예인들이 커다란 아파트에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무한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평범한 젊은 부부들이 출산을 하고 싶어하게 될까? 결혼과 출산은 각자의 선택이지만, 그 사회의 문화가 그 선택에 큰 장애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음을 쉽게 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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